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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타벅스 사태와 정용진의 사과 - 사과란 무엇인가

교육&철학

by by Noma 2026. 5. 26. 2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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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895자의 형식

2026년 5월 26일 오전 9시, 정용진 신세계그룹 회장은 서울 강남구 조선팰리스 호텔에서 허리를 굽혔다. 5·18 민주화운동 기념일에 진행된 스타벅스코리아의 '탱크데이' 이벤트, 그리고 "책상에 탁!"이라는 홍보 문구. 논란이 불거진 지 8일 만의 대면 사과였다.

그는 "진심으로 머리 숙여 사죄드린다"고 말했다.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다"고 말했다.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다"고 말했다. 895자로 구성된 사과문이었다. 형식은 완벽했다.

그런데 무언가 채워지지 않는 느낌이 남는다. 그 느낌의 정체를 언어철학과 정치철학의 언어를 빌려 해부해보려 한다. 사과란 무엇인가. 그리고 오늘 우리가 본 것은 사과였는가.


사과는 진술이 아니라 행위다

언어철학자 J.L. 오스틴(John Langshaw Austin)은 『말과 행위(How to Do Things with Words)』(1962)에서 언어를 두 종류로 구분했다. 무언가를 기술하는 진술적(constative) 발화와, 발화하는 것 자체가 행위가 되는 수행적(performative) 발화. "저는 당신에게 사죄드립니다"라는 문장은 후자에 속한다. 이 말은 사과라는 사태를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사과라는 행위 자체다.

그런데 오스틴은 여기서 중요한 조건을 제시한다. 수행적 발화가 성공하려면, 즉 진정한 행위가 되려면, 일정한 조건이 충족되어야 한다. 그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수행적 발화는 '불발(misfire)'이다. 발화의 껍데기만 있을 뿐, 행위는 일어나지 않는다. 결혼식에서 주례가 아닌 하객이 "두 사람을 부부로 선언합니다"라고 말해도 혼인이 성립하지 않는 것처럼, 사과도 성립하기 위한 조건이 있다.

그 조건은 적어도 세 가지다. 화자가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 알아야 한다. 그 인식이 외부 압력이 아닌 내부 자각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후의 행동이 그 언어를 뒷받침해야 한다. 사과는 옳은 말을 하는 것이 아니다. 옳은 말이 성립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는 것이다.

이 기준으로 오늘의 사과를 들여다보면, 무엇이 보이는가.


895자 안에 무엇이 있었고, 무엇이 없었는가

먼저 타이밍. 정 회장이 육성으로 사과한 것은 불매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경찰 수사가 본격화되고, 대통령이 공개적으로 비판에 나선 이후였다. 논란 발생 후 8일. 1차 서면 사과의 압박 수위가 불충분하다는 판단이 서자 2차 대면 사과로 격상된 이 구조는, 이 사과가 감정의 언어가 아니라 협상의 언어임을 드러낸다. 진심이 먼저였다면, 손실 계산이 끝나기 전에 나왔어야 한다.

장소도 읽힌다. 조선팰리스 호텔. 광주가 아니었다. 유족들 앞이 아니었다. 5·18의 고통과 가장 먼 좌표에서 허리를 굽혔다. 그 굽힘의 대상이 역사였는지, 카메라였는지는 장소가 이미 말하고 있다.

그러나 가장 결정적인 것은 언어의 배치다. 895자의 사과문에서 이번 사태의 잘못을 명시한 대목은 "부적절한 마케팅" 단 일곱 글자뿐이었다. 어떤 역사를 어떻게 함부로 다루었는지, 그 구체적 서술은 없었다. 사과의 핵심 요소, 즉 내가 무엇을 잘못했는가에 대한 직시가 일곱 글자로 압축된 채 나머지 888자는 반성과 다짐과 부탁으로 채워졌다.

'부탁'이라는 단어를 주목해야 한다. 정 회장은 "너그러이 이해해 주시기 부탁드린다",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주시기를 부탁드린다"고 말했다. 사죄와 책임이라는 단어들과 비슷한 무게로, 이해와 관용과 비난 자제의 요청이 병렬로 배치되었다. 사과의 언어 안에 피해자를 향한 부담이 함께 실린 것이다.

더 심각한 대목도 있다. "각자의 생각은 다를 수 있겠지만"이라는 문장. 이 문장이 향하는 곳을 보라. 5·18은 해석이 갈리는 논쟁적 사안이 아니다. 그것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역사적 사실이다. '견해의 다양성'을 언급하는 순간, 사과는 피해자의 고통을 온전히 인정하는 행위에서 자기 입장을 방어하는 행위로 미끄러진다. 스타벅스가 상처를 입힌 그 역사가, 마치 해석의 차이가 존재하는 사안인 것처럼 프레이밍된다.

"어떠한 변명도 하지 않겠다"는 발화 역시 그 자체가 변명의 구조를 내장하고 있다. 이 말은 암묵적으로 이렇게 말한다. '변명거리가 있지만, 나는 고결하게도 그것을 말하지 않겠다.' 니체(Friedrich Nietzsche)가 『도덕의 계보(Zur Genealogie der Moral)』에서 분석한 것처럼, 자책의 언어는 도덕적 서사를 선점하는 권력의 형식이 될 수 있다. 스스로를 가장 낮추는 자가, 동시에 상대방이 더 이상의 책임을 묻기 어렵게 만드는 위치를 차지한다.

"모든 책임은 내게 있다"는 선언과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달라"는 부탁이 같은 문장 안에 공존할 때, 그 사과는 누구를 향하고 있는가.


이것은 정보의 문제가 아니다

여기서 멈추면 이 비판은 정 회장 개인을 향한 것이 된다. 문제는 더 깊은 곳에 있다. 5·18 기념일에 탱크를 소환하고,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의 문구를 텀블러 프로모션에 끌어들이는 일이 어떻게 기업의 마케팅 캘린더를 통과할 수 있었는가.

정 회장은 재발 방지책으로 "전 임직원 역사 교육"과 "내부 검수 절차 재점검"을 약속했다. 이 약속이 전제하는 진단을 보라. 담당자가 5·18을 충분히 알지 못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라는 것. 지식을 채우면 해결된다는 논리다.

그러나 이것은 지식의 결핍이 아니라 감수성의 구조 문제다. 역사적 고통이 조직의 의사결정 과정에서 아무런 무게도 갖지 못한다는 것, 누군가 "이건 괜찮냐"고 물을 수 없는 위계가 있다는 것, 5월 18일이 달력의 한 칸에 불과하다는 무의식이 이미 내면화되어 있다는 것. 이것은 교육으로 교정되지 않는다. 교육은 지식을 전달하지만, 감수성은 권력 구조가 바뀌어야 생긴다. 누가 어떤 목소리를 낼 수 있는가, 그 배치가 달라지지 않으면 검수 절차는 또 다른 형식이 될 뿐이다.

오늘 사과에서 그 물음은 완전히 부재했다. 정 회장은 결과를 사과했지만, 그 결과를 가능하게 한 구조에 대해서는 침묵했다. "부적절한 마케팅" 일곱 글자가 그 침묵의 정확한 크기다.


아렌트: 용서는 청구할 수 없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인간의 조건(The Human Condition)』(1958)에서 용서를 인간의 공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근본 능력으로 다루었다. 과거의 행위는 돌이킬 수 없다. 용서만이 그 행위의 결과에서 행위자를 해방시킨다. 그런데 아렌트에게 용서는 결정적으로 요청해서 받아내는 것이 아니다. 용서는 피해자의 자발적 선물이다. 그것을 청구하는 것은 이미 용서의 논리를 파괴한다.

정 회장은 오늘 "여러분의 용서를 구한다"고 말했다. 나아가 "너그러이 이해해 달라"고,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봐 달라"고 말했다. 사과의 언어 안에 피해자를 향한 요청이 포개졌다. 아렌트의 언어로 말하면, 이것은 공적 행위에 의한 화해의 시도가 아니라 사적 이해관계의 수사학적 표현이다. 용서를 청구하는 것도 모자라, 이해와 관용이라는 부담까지 피해자에게 돌려보낸 것이다.

오스틴과 아렌트의 논의를 함께 놓으면, 진정한 사과의 조건이 역으로 도출된다.

첫째, 화자가 자신이 정확히 무엇을 했는지를 알아야 한다. "부적절한 마케팅"이 아니라, 어떤 역사를 어떻게 함부로 다루었는지를 직시해야 한다. 잘못의 실체가 일곱 글자로 압축되는 한, 사과는 오스틴의 의미에서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둘째, 용서를 청구하지 않아야 한다. 이해와 관용을 요청하는 것은 더더욱 안 된다. 아렌트가 말했듯, 용서는 피해자의 시간표 위에서만 가능하다. 사과 이후의 침묵을 견딜 수 있어야 한다.

셋째, 공적 책임을 개인에게 귀속시키는 것으로 끝내서는 안 된다. "내 책임"의 선언이 아니라, 그 책임을 가능하게 한 구조를 해체하는 실천이 따라야 한다. 역사 교육과 검수 절차는 그 출발점조차 되지 못한다.

이 세 조건은 하나로 압축된다. 사과와 용서의 주체가 자기 자신이 아니라 피해자여야 한다는 것. 내가 얼마나 반성하는가가 아니라, 그들이 무엇을 잃었는가로부터 출발해야 한다는 것.


마치며: 다음 5월 18일

5·18은 민감한 날짜가 아니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피를 흘리며 쓴 역사다. 그 날이 마케팅 캘린더의 한 칸으로 처리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그 기업이 그 역사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지를 고스란히 드러낸다.

정 회장은 오늘 "오늘의 사과를 끝이 아닌 시작으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 말이 진심인지는 언어로 확인되지 않는다. 다음 5월 18일에 이 기업의 의사결정 구조가 어떻게 작동하는지로 확인된다. 누가 무엇을 물을 수 있고, 누구의 목소리가 그것을 멈추게 하는지로 확인된다.

그리고 895자의 사과문을 읽고 또 읽어도 여전히 풀리지 않는다고 말하는 피해자들이 있는 한, 그 확인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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