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며: 말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만든 교육
플라톤은 말했다. "정치를 외면한 가장 큰 대가는 가장 저질스러운 인간들에게 지배받는 것이다." 이 경고는 오늘날 한국 교육 현장에 그대로 적용된다. 교육정책을 결정하는 자리에, 교육 현장을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가장 적게 반영된다.
1편에서 논증한 것처럼, 학생인권조례는 옳은 문제의식에서 출발했지만 교육 관계의 특수성을 담지 못한 언어로 설계되었다. 아동학대처벌법은 정당한 취지를 가지고 있었지만 교육적 판단의 고유한 논리를 고려하지 않은 채 교육 현장에 적용되었다. 법원은 교육 행위를 일반 과실의 기준으로 심사했다. 이 모든 입법과 판결의 과정에서 교육 현장의 전문가들은 어디에 있었는가.
그들은 침묵하고 있었다. 구조적으로, 강제적으로.
행정과 사법으로는 닿을 수 없는 것
1편에서 진단한 문제들에 대해 지금까지 제시된 해법들이 있다. 서이초 사건 이후 2023년 9월부터 12월 사이에 국회를 통과한 교권보호 5법이 그 대표적인 시도다. 교육기본법, 유아교육법, 초·중등교육법, 교원지위법, 아동학대처벌법. 다섯 개의 법이 개정되었다.
그 내용을 보면 일정한 성과가 있다. 교육기본법에는 "보호자는 교원과 학교가 전문적인 판단으로 학생을 교육·지도할 수 있도록 협조하고 존중하여야 한다"는 조항이 신설되었다. 교원지위법에서는 아동학대 신고 시 교육감이 수사기관에 의견을 제출해야 함을 명시하고, 정당한 사유 없이는 직위해제를 제한하도록 했으며, 학교에 설치되어 있던 교권보호위원회를 교육청으로 상향 이관했다. 아동학대처벌법에서는 교원의 정당한 지도활동은 아동학대로 보지 않는다는 점을 명시했다.
그런데 법 개정 이후에도 현장의 변화를 체감하는 교사의 비율은 높지 않다. 교육감이 정당한 생활지도라는 의견을 제출해도 교사가 정식 입건되어 수사를 받는 사례가 여전히 이어지고 있다. 교권보호위원회 심의 건수는 오히려 증가했다. 무엇이 문제인가.
아동학대처벌법에 "정당한 교육활동은 아동학대가 아니다"라는 조항을 넣은 것을 보라. 이것은 교육 행위를 아동학대법의 하위 항목으로 놓은 채, 그 안에 예외 조항을 만드는 방식이다. 교육이 여전히 아동학대법의 언어 안에 있다. 교육 고유의 언어를 세운 것이 아니라, 사법의 언어 안에서 교육을 보호하는 방어막을 친 것이다. 교원지위법 개정도 마찬가지다. 교사를 보호하는 절차를 만들고, 교육청이 더 적극적으로 개입하도록 했지만, 교육적 지도 행위가 범죄 혐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구조 자체는 건드리지 않았다.
이것이 교권보호 5법의 근본적 한계다. 이 법들이 보여주는 것은 사법화된 문제를 더 정교한 법으로 관리하려는 시도의 한계다. 방어막은 더 두꺼워졌지만, 방어막을 필요로 만드는 구조는 그대로다. 교사는 여전히 교육적 판단보다 법적 안전을 먼저 계산해야 하는 위치에 있다. 더 촘촘한 방어막이 그 계산을 없애주지는 않는다.
문제의 구조를 다시 보라. 교사가 생활교육위원회를 소집하면 아동학대로 고소당할 수 있다. 이에 대한 행정적 해법은 교사를 보호하는 절차를 만드는 것이다. 교육감이 의견서를 내고, 변호사를 지원하고, 수사 개시 전 종결 비율을 높이는 것. 그러나 이 해법은 교육적 지도 행위가 범죄 혐의의 출발점이 될 수 있다는 구조 자체를 건드리지 않는다. 교사를 보호하는 방어막을 쌓는 것이지, 교육 행위에 고유한 존엄을 부여하는 것이 아니다.
1편에서 논증한 것처럼, 교육의 위기는 관리의 실패가 아니라 언어의 실패다. 교육 고유의 언어가 사법의 언어에 침탈당한 것이다. 이 침탈에 맞서는 것은 더 정교한 행정이 아니라 교육의 언어를 되찾는 것이다. 그리고 그 언어를 되찾으려면, 그 언어를 말할 수 있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가져야 한다.
구조적 침묵: OECD 유일의 교원 정치기본권 박탈
한국의 교사는 공무원이다. 국가공무원법은 공무원의 정치 운동을 금지하고, 정당법은 교원의 정당 가입을 금지하며, 공직선거법은 선거 관여를 제한한다. 교원노조 관계자들은 OECD 가입국 중 교원의 기본권을 이처럼 전면적으로 제한하는 나라는 대한민국이 유일하다고 지적한다. 교사노동조합연맹은 "교사들은 4~5년에 한 번 돌아오는 선거 당일 투표권 행사로 내가 시민이려니 하고 살아간다"고 말한다.
이것을 단순히 기본권 침해의 문제로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더 깊은 구조적 의미가 있다.
교사가 정치적으로 발언할 수 없다는 것은, 교육정책에 대해 집단적으로 의견을 형성하고 요구할 수 없다는 것이다. 교육 현장의 전문가들이 교육 입법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된다. 이것은 의사가 의료 입법에, 법관이 사법 제도 개혁에 발언권을 갖지 못하는 것과 같다. 전문가 집단의 목소리가 배제된 자리에 무엇이 채워지는가.
목소리가 큰 집단의 요구가 채워진다.
누가 교육 입법을 주도했는가
학생인권조례는 누가 만들었는가. 진보 교육감들과 그들을 지지하는 학부모·시민단체들이 주도했다. 교사들은 찬반으로 갈렸지만, 집단적으로 자신들의 의견을 입법 과정에 반영할 수 있는 통로가 없었다. 1편에서 지적한 것처럼, 전교조는 학생인권조례를 지지했지만 그것이 교사의 교육적 권한을 어떻게 잠식할 것인지에 대한 내부 논의가 충분하지 않았다. 이것은 전교조의 실책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교사 집단이 정치적으로 발언할 통로가 막혀 있었던 구조의 문제이기도 하다.
아동학대처벌법이 교육 현장에 광범위하게 적용되게 된 것도 같은 구조 안에서 이루어졌다. 아동의 권리를 보호해야 한다는 정당한 요구가 있었고, 이것을 대변하는 정치적 목소리가 있었다. 교육 현장의 특수성을 고려해야 한다는 교사들의 목소리는 구조적으로 차단되어 있었다. 아동학대처벌법이 입법될 때, 그것이 교육 현장에서 어떻게 작동할 것인지를 가장 잘 아는 사람들의 의견이 체계적으로 반영되지 않았다.
속초 판결도 마찬가지다. 그 판결이 내려지는 법정에서 교육 행위에 고유한 판단 기준이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누가 충분히 대변했는가. 교육적 표준이 무엇인지를 법원에 설득할 수 있는 집단적 전문성이 법적 과정에 투입되었는가. 교사의 정치적 침묵이 강제된 구조에서, 교육 전문가 집단이 사법 과정에 체계적으로 개입할 역량과 통로는 애초에 갖추어지기 어렵다.
학생인권조례가 이렇게 설계된 것도, 아동학대법이 교육적 맥락 없이 적용되는 것도, 속초 판결이 나온 것도 이 구조와 무관하지 않다. 교사의 정치적 침묵이 강제된 결과가 교육 정책의 실패로, 그리고 교육 현장의 붕괴로 돌아온 것이다.
언론의 역할과 책임
이 구조를 강화하는 데 언론도 한몫을 했다.
교권침해 문제가 공론화된 방식을 보라. 개별 사례의 자극적 보도가 구조적 분석을 대체했다. 목소리가 큰 학부모의 이야기, 교사를 괴롭히는 학생의 이야기. 이것들은 분노를 낳지만 구조를 드러내지 않는다. 반대로 학생인권 침해 사례가 보도될 때는 어떤 언어가 사용되었는가. 개인의 권리가 침해되었다는 언어. 교육적 맥락은 사라지고 피해자와 가해자의 이분법만 남는다.
서이초 사건이 보도된 방식을 보라. 처음에는 교사의 죽음이 중심이었지만, 이내 학생인권조례 대 교권이라는 정치적 대립 구도로 프레이밍되었다. 교육 고유의 언어를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라는 본질적 물음은 이 구도 속에서 사라졌다. 한쪽은 학생인권조례를 지켜야 한다고 했고, 다른 쪽은 폐지해야 한다고 했다. 그 어느 쪽도 교육 관계를 어떤 언어로 재구성해야 하는가를 묻지 않았다.
언론이 교육 문제를 다루는 방식 자체가 이미 사법화된 언어로 작동한다. 누가 피해자인가, 누가 가해자인가. 교육적으로 무엇이 옳은가라는 물음은 잘 제기되지 않는다. 이 언어가 여론을 형성하고, 여론이 입법에 영향을 미치며, 그 입법이 교육 현장을 더욱 사법화한다. 악순환이다.
교사의 정치적 권리 회복이 왜 교육철학의 문제인가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문제를 단순히 노동권의 문제로 보는 것은 충분하지 않다. 그것은 교육철학의 문제다.
교사가 세계에 대해 발언하는 시민일 때, 그는 학생들에게 세계에 대해 발언하는 방법을 몸으로 보여줄 수 있다. 발언을 금지당한 교사의 교실에서 민주주의 교육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비판적 사유를 가르치는 사람이 스스로 비판적 발언을 금지당한 역설. 이 역설이 교실을 살아 있는 공간이 아니라 정해진 내용을 전달하는 공간으로 위축시킨다.
핀란드와 독일의 교사들은 정치적 의견을 공개적으로 표명하고, 교육정책에 대해 집단적으로 발언하며, 그 발언이 입법 과정에 반영된다. 이 구조가 교실을 살아 있는 민주주의의 공간으로 만드는 조건이다. 한국에서는 그 반대의 구조가 작동하고 있다. 정치적으로 침묵을 강요당한 교사가 교실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친다. 이 아이러니가 교육의 본질을 얼마나 훼손하는지는 쉽게 가늠하기 어렵다.
'교육의 정치적 중립'이라는 원칙이 이 침묵을 정당화한다. 그런데 이 원칙을 어떻게 해석하느냐가 중요하다. 교사가 수업 시간에 특정 정당이나 후보를 지지하는 것은 교육의 정치화이며 경계해야 한다. 그러나 교사가 교육정책에 대해 직업적 전문가로서 의견을 갖고, 그것을 시민으로서 발언하는 것은 정치화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 사회에서 모든 시민이 갖는 권리이자, 교육 전문가 집단이 수행해야 할 사회적 역할이다. 지금의 한국은 이 둘을 구분하지 않고 모두 금지하고 있다.

새로운 교육 관계의 언어: 무엇이 가능한가
그렇다면 무엇이 필요한가. 세 가지 조건을 제시한다.
첫째, 교육 행위에 대한 교육적 표준의 법적 확립이다. 의료에 의료적 표준이 있듯, 교육적 판단은 교육적 기준으로 심사되어야 한다. 교사의 생활지도 행위를 법원이 심사할 때, 일반 과실의 기준이 아니라 교육 전문가 공동체의 판단 기준이 적용되어야 한다. 이것은 법 기술적 문제이기 이전에, 교육 행위에 고유한 존엄을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의 문제다. 생활교육위원회 소집, 수업 중 분리 조치, 훈육의 언어. 이것들이 아동학대 혐의의 출발점이 되는 구조는, 교육 행위가 교육의 언어가 아니라 법의 언어로만 심판받는 구조다. 이 구조를 바꾸는 것은 입법의 문제이지만, 그 입법이 가능하려면 교육 행위에 고유한 논리가 있다는 사회적 인식이 먼저 형성되어야 한다.
둘째, 국가의 책임 구조 재설계다. 교육을 의무화하는 국가가 교육적 판단의 책임을 교사 개인에게 넘기는 것은 구조적 모순이다. 권한은 국가가 갖고, 책임은 개인이 지는 이 구조가 교사로 하여금 교육적 판단보다 법적 안전을 우선하게 만든다. 교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위험의 책임을 국가가 분담하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 교사가 교육적으로 정당한 판단을 했을 때, 그 판단에 대한 법적 책임을 국가가 함께 진다는 원칙. 이것 없이는 어떤 교사도 소풍을 가거나, 생활교육위원회를 소집하거나, 문제 학생에게 단호하게 개입하는 것을 교육적 판단이 아닌 법적 위험으로 계산하게 된다.
셋째,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회복과 교육 입법 과정에의 실질적 참여다. 이것 없이는 앞의 두 조건도 실현되기 어렵다. 교육 현장의 전문가들이 교육 입법을 주도해야 한다. 아동학대처벌법이 교육 현장에 어떻게 적용될 것인지, 학생인권조례가 교육 관계를 어떻게 재편할 것인지, 법원의 판단 기준이 교육적 표준과 어떻게 충돌하는지. 이것들을 가장 잘 알고 가장 정확하게 진단할 수 있는 사람들이 입법 과정에서 구조적으로 배제되어 있다. 교사의 침묵을 강제하는 구조가 지속되는 한, 교육정책은 교육 바깥의 언어로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이 세 가지 조건은 분리된 것이 아니다. 교육 행위에 고유한 존엄을 인정하는 사회적 합의, 그 합의를 가능하게 하는 교사의 발언권, 그리고 그 발언권이 입법으로 이어지는 구조. 이것들이 함께 작동할 때만 교육의 언어가 사법의 언어에 대항하는 힘을 가질 수 있다.
교육의 언어는 어디서 오는가
마지막으로 가장 근본적인 물음으로 돌아온다. 교육 고유의 언어란 무엇인가. 그것은 어디서 오는가.
권리의 언어가 개인의 보호를 위한 방어적 언어라면, 교육의 언어는 성장을 위한 적극적 언어다. 권리의 언어가 현재의 침해를 막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면, 교육의 언어는 미래의 가능성을 여는 것에 관심을 갖는다. 권리의 언어가 개인과 개인 사이의 경계를 설정하는 것이라면, 교육의 언어는 그 경계를 넘어 타인의 성장에 책임을 지는 것이다.
이것은 도덕적 요청이기 이전에 인간학적 통찰이다. 인간은 혼자서 인간이 되지 않는다. 인간은 다른 인간과의 관계 안에서, 그 관계가 제공하는 안내와 저항과 도전을 통해 성장한다. 교육은 이 과정의 의도적 조직화다. 이 과정에서 교사는 학생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는 잠재적 가해자가 아니라, 학생이 더 나은 인간이 될 수 있도록 돕는 책임 있는 동반자다.
이 언어를 법적으로, 제도적으로, 사회적으로 회복하는 것. 그것이 교육의 사법화에 맞서는 근본적인 대응이다. 그리고 그 대응은, 그 언어를 가장 잘 알고 가장 절실하게 필요로 하는 사람들이 목소리를 가질 때만 가능하다.
마치며: 교육이 교육이기 위한 조건
소풍이 사라지고, 축구가 금지되고, 생활지도가 범죄 혐의가 되는 교실. 이것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권위주의 교육에 저항한 진보 교육 운동의 철학적 공백, 권리의 언어로만 설계된 학생인권조례의 구조적 결함, 교육 행위의 특수성을 외면한 사법부의 판단, 목소리가 큰 집단의 요구에 반응한 입법, 교사의 목소리를 구조적으로 차단한 정치 체계, 사법화된 언어로 교육 문제를 보도한 언론. 이 모든 것이 겹쳐 지금의 교실이 만들어졌다.
학생인권조례 폐지가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것처럼, 교원보호 5법이나 교사 소송 국가책임제만으로도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 교육의 사법화는 교육을 법의 하위 항목으로 취급하는 인식에서 비롯되었다. 그 인식을 바꾸는 것은 법 조항 하나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교육이 무엇인가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새롭게 형성하는 것이다.
그 합의는 교육 현장에서 온다. 매일 아이들과 마주하며 그 성장을 지켜보는 사람들이 무엇이 필요한지를 안다. 그들이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교육 정책을 입안하는 자리에서, 법원에서, 언론에서. 그들의 언어가 권리의 언어와 사법의 언어를 넘어 교육 고유의 언어로 사회에 울려퍼질 때, 비로소 교육이 교육이기 위한 조건이 만들어진다.
교사의 침묵이 강제된 사회에서 민주주의 교육은 불가능하다. 그 침묵을 끝내는 것이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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