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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왜 정치적 발언이 금지되어 있나 3편: 중립이라는 언어를 다시 묻다

교육&철학

by by Noma 2026. 5. 23. 0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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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년 서이초등학교 교사의 죽음 이후, 교권 논의는 뜨거워졌다. 2024학년도 교육활동 침해 심의 건수는 4,234건으로 5년 전의 3배를 넘었다. 지난해 스스로 목숨을 끊은 교사는 28명, 올해 상반기에만 이미 9명이다. 명예퇴직자는 2024년 3,119명으로 처음 3,000명을 넘어섰다.

이 문제를 두고 많은 진단이 나왔다. 학부모 문화의 병리, 아동학대처벌법의 부작용, 민원 처리 시스템의 미비.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런데 이 글에서는 다른 질문을 던지려 한다. 교사를 이토록 무력한 존재로 만든 것이 최근의 현상인가, 아니면 훨씬 오래된 구조인가. 그리고 그 구조의 핵심에는 무엇이 있는가.


1. '정치적 중립'이라는 개념을 다시 묻다

교사의 정치적 발언을 막는 근거로 항상 등장하는 것이 '정치적 중립'이다. 교사는 학생에게 특정 정치적 견해를 주입해서는 안 된다는 원칙. 이것은 얼핏 합리적으로 들린다. 그런데 이 원칙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보면, 개념 자체를 다시 물어볼 필요가 생긴다.

한국에서 '정치적 중립'은 기본적으로 금지의 언어다. 교사는 정당에 가입할 수 없고, 선거 운동을 할 수 없으며, 집회에서 정치적 발언을 할 수 없다. 퇴근 후 개인 자격으로도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면 징계 위협을 받는다. 1편에서 살펴봤듯이, 4대강 반대 시국선언이 형사기소 사유가 되고, 세월호 참사의 국가 책임을 묻는 것이 징계를 촉발했다. 이것이 한국에서 '정치적 중립'의 실체다.

그런데 같은 원칙을 전혀 다른 방식으로 구현한 사례가 있다. 1976년 독일 바덴-뷔르템베르크 주의 소도시 보이텔스바흐에서 열린 정치교육 학술회의가 그것이다. 당시 좌우 진영 간 정치적 논란이 치열한 상황에서, 교육자·정치가·시민사회단체들이 함께 모여 하나의 합의를 이끌어냈다. 이것이 '보이텔스바흐 합의(Beutelsbacher Konsens)'다.

이 합의는 세 가지 원칙으로 구성된다.

첫째, 강압(교화)의 금지. 교사가 원하는 견해를 학생에게 강압적으로 주입해서는 안 된다. 어떤 수단을 사용하든 학생이 독립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방해해서는 안 된다.

둘째, 논쟁성의 원칙. 정치와 학문에서 논쟁적인 것은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사회에서 실제로 논쟁이 벌어지는 문제를 교실에서 인위적으로 정답이 있는 것처럼 가르쳐서는 안 된다.

셋째, 학생의 정치적 행위능력 육성. 학생들은 자신의 정치적 상황과 이해관계를 분석하고, 이에 따라 정치적 상황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수단과 방법을 찾을 수 있어야 한다.

이 합의가 한국의 '정치적 중립'과 결정적으로 다른 지점이 무엇인지 보이는가. 보이텔스바흐 합의는 교사의 발언 자체를 금지하지 않는다. 오히려 전제한다. 교사는 자신의 견해를 가진 시민이며, 그 견해를 표현할 수 있다. 다만 그것을 학생에게 강압적으로 주입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논쟁적인 사안은 논쟁적인 것으로 가르쳐야 한다는 것이다.

한국의 '중립'은 교사의 침묵을 요구한다. 독일의 '중립'은 교사가 다양한 관점을 균형 있게 다루는 능력을 요구한다. 전자는 교사를 교실에서 지워버리고, 후자는 교사를 민주적 토론의 모델로 세운다. 이 차이가 교실에서 무엇을 만들어내는지는 결코 작은 문제가 아니다.


2. 교권 대 학생인권, 이 구도는 누구를 위한 것인가

2023년 교권 논쟁이 뜨거워지면서 한 가지 대립 구도가 형성되었다. 학생인권조례가 교권을 침해했다는 주장이었다. 학생에게 너무 많은 권리를 주다 보니 교사가 생활지도를 할 수 없게 되었다는 논리. 일부 교육감들이 학생인권조례 폐지·개정 논의를 꺼냈고, 언론은 '교권 대 학생인권'이라는 대립 구도를 키웠다.

그런데 현장 교사들의 반응은 달랐다. 서울교사노동조합을 포함한 교사 단체들은 "사건의 문제가 학생인권조례로 귀결되면서 정치적 공방으로 흐르는 것에 반대한다"고 명시적으로 밝혔다. 현장의 교사들은 자신들의 문제가 학생인권의 문제가 아니라, 교사를 보호할 수 없는 노동환경의 문제라고 봤다.

이 대립 구도가 왜 문제인지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교권과 학생인권을 제로섬 관계로 설정하는 것은 두 가지 효과를 낳는다.

하나는, 기본권을 가져야 할 두 주체를 서로 싸우게 만든다. 교사와 학생이 서로의 권리를 두고 경쟁하는 동안, 그 둘을 동시에 억압해온 구조는 논의 밖으로 밀려난다. 교사를 정치적으로 무력화해온 법제, 학교를 권위주의적으로 설계해온 질서가 건드려지지 않는다.

다른 하나는, 학생인권의 후퇴를 정당화한다. 교권 침해의 원인을 학생인권조례에서 찾으면, 해법은 자연스럽게 학생의 권리를 줄이는 방향으로 흐른다. 그러나 이것이 교사의 상황을 실질적으로 개선하는가. 학생에게 더 강한 제재를 가할 수 있게 되는 것과 교사가 사회에서 시민으로 대우받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교사의 권위는 학생을 통제하는 힘에서 나오지 않는다. 그것은 사회적 존중에서 나온다. 그리고 그 존중은 교사가 시민으로서 발언하고, 판단하고, 공적 삶에 참여하는 존재로 인정받을 때 가능하다. 발언권을 박탈당한 교사에게 학생 통제권을 강화해준다고 해서 사회적 권위가 회복되지는 않는다.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과 학생의 인권은 같은 방향의 과제다. 교사가 먼저 시민으로 설 때, 학생을 시민으로 대우하는 교실이 가능해진다. 그리고 학생이 시민으로 대우받는 교실에서, 교사와 학생의 관계는 통제와 복종이 아니라 함께 세상을 탐구하는 관계가 될 수 있다.


3. 교사가 정치적 발언권을 가진다면, 교실에서 무엇이 달라지는가

이것이 3편의 핵심 질문이다. 추상적인 수준에서 "민주주의가 살아난다"는 말은 쉽다. 구체적으로 무엇이 달라지는지를 물어야 한다.

먼저, 수업 자체가 달라질 수 있다. 보이텔스바흐 합의의 두 번째 원칙을 기억해보자. 논쟁적인 사안은 수업에서도 논쟁적으로 다루어져야 한다. 지금 한국의 교실에서 이것이 가능한가. 최저임금을 올려야 하는가,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탈원전이 맞는가, 이민자를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가. 이런 문제들을 교실에서 논쟁적으로 다루는 교사는 언제든 '정치적 편향'이라는 비판에 노출된다. 그 비판이 두려운 교사는 침묵을 선택한다. 침묵하는 교사의 수업에서 학생들은 사회의 논쟁적 현실을 어디서 배우는가.

다음으로, 교사의 사회적 권위가 달라질 수 있다. 아렌트의 언어로 돌아가면, 공적 영역에서 발언하고 행위하는 것이 시민의 조건이다. 교사가 사회의 현실에 대해 발언하고, 권력에 질문을 던지고, 공적 문제에 참여하는 시민으로 서 있을 때, 학생들은 그 교사를 단순한 교과서 전달자가 아니라 살아있는 시민으로 경험한다. 그 경험이 교사에 대한 존중의 기반이 된다. 교사의 권위는 제도가 부여하는 것이 아니라, 교사가 어떤 존재인가에서 나온다.

마지막으로, 교육과정을 지키는 힘이 달라질 수 있다. 2편에서 살펴봤듯이, 통합사회의 수능 편입은 의미 있는 변화다. 그런데 교육과정은 정치적 압력에 언제든 후퇴할 수 있다. 국정 역사 교과서 논란이 그것을 보여줬다. 이 성과를 지키는 힘은 어디서 오는가. 교사가 시민으로서 공개적으로 발언하고, 사회적 논의에 참여하고, 연대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침묵을 강요받은 교사는 교육과정이 후퇴할 때도 침묵할 수밖에 없다.


4. 그렇다면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을 위해 구체적으로 무엇이 필요한가.

가장 직접적인 것은 법 개정이다. 정당법 22조의 교원 정당가입 금지 조항, 국가공무원법 65조의 정치운동 금지 조항. 이 조항들이 쿠데타 정권이 만든 법이라는 역사적 사실을 우리는 1편에서 확인했다. OECD 국가 중 교사의 정당 가입을 전면 금지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는 사실도. ILO가 수차례 이 조항들이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다고 비판했다는 사실도. 이 법을 바꾸는 것이 출발점이다.

그러나 법 개정만으로 충분하지 않다. 보이텔스바흐 합의가 시사하는 것처럼, 교사의 발언권이 열린다고 해서 자동으로 민주적 교실이 만들어지지는 않는다. 교사가 논쟁적 사안을 다양한 관점에서 다루는 능력, 학생의 독립적 판단을 지원하는 수업 방식, 이것들이 함께 가야 한다.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보장과 민주시민교육 역량 강화는 함께 논의되어야 할 과제다.

더 근본적으로는, 교사를 어떤 존재로 볼 것인가의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 교사가 국가 정책을 전달하는 도구인가, 아니면 다음 세대의 시민을 함께 만들어가는 민주주의의 동반자인가. 이 질문에 어떻게 답하느냐에 따라, 교사의 발언권 문제는 단순한 노동권의 문제가 아니라 민주주의의 설계 문제가 된다.


나오며

이 연작은 하나의 질문에서 시작했다. 교사는 왜 정치적 발언이 금지되어 있는가.

그 답을 따라가다 보면, 1963년 쿠데타 정권이 만든 법이 나오고, 해직당한 교사들이 나오고, 입시 경쟁에 잠식된 교실이 나오고, 사회를 읽는 언어를 배우지 못한 세대가 나온다. 그리고 지금 무너지고 있는 교사의 지위가 나온다.

이 모든 것이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 교사를 침묵시킨 나라는 교실에서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데 실패했고, 그 실패의 비용은 지금 여러 방식으로 청구되고 있다는 것.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 회복은 교사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교실이 다시 민주주의가 살아 숨쉬는 공간이 될 수 있는가의 문제이며, 다음 세대가 시민의 언어를 갖게 될 것인가의 문제다. 그리고 그 언어 없이 민주주의는 제도는 될 수 있어도, 삶이 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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