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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는 왜 정치적 발언이 금지되어 있나 1편: 금지의 역사 — 독재가 남긴 제도

교육&철학

by by Noma 2026. 5. 23. 00: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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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에 시사 문제를 꺼냈다가 학부모 민원을 받은 교사, 주말 집회에 참가했다가 징계 위기에 처한 교사, SNS에 정치적 의견을 올렸다가 교육청 경고를 받은 교사. 이런 일들이 2020년대 한국에서 여전히 일어나고 있다. 교사는 공무원이라는 이유로, 그리고 '정치적 중립'이라는 이름 아래, 다른 시민이라면 당연히 누릴 수 있는 정치적 표현과 참여의 권리를 광범위하게 제한받는다. 우리는 이 사실을 너무 오랫동안 당연하게 받아들여 왔다.

왜 교사는 정치적 발언을 하면 안 되는가. 이 금지는 어디서 왔는가. 그리고 그것은 정당한가.


1. 민주주의와 교육: 교사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해 먼저 더 근본적인 질문을 던져야 한다. 민주주의 사회에서 교사는 어떤 존재인가.

20세기 초 미국의 철학자 존 듀이(John Dewey)는 민주주의를 단순한 정치제도가 아니라 '삶의 양식(a way of life)'으로 정의했다. 그에게 민주주의란 시민들이 공통된 문제들을 비판적 탐구와 합리적 방법으로 함께 해결하는 공동체적 실천이었다. 그리고 그 실천이 가장 먼저 배워지는 곳이 학교였다. 학교는 민주주의를 가르치는 공간이 아니라 민주주의를 살아내는 공간이어야 했다.

그렇다면 그 공간의 핵심 매개자인 교사는 어떤 존재여야 하는가. 듀이의 논리를 따라가면 답은 명확하다. 교사 자신이 먼저 민주적 시민이어야 한다. 공동체의 문제에 발언하고, 권력에 질문을 던지고, 공적 삶에 참여하는 시민. 그런 존재로서의 교사가 교실 안에 있을 때, 학생들은 민주주의를 추상적 개념이 아니라 살아있는 실천으로 배울 수 있다.

한나 아렌트(Hannah Arendt)는 이 문제를 더 날카롭게 파고든다. 아렌트에게 인간이 인간으로서 존재하는 조건은 공적 영역에서 말하고 행위하는 것이었다. 타인과 함께 공적 문제를 논의하고, 자신의 판단을 발언하는 행위를 통해 인간은 비로소 시민이 된다. 공적 발언권을 박탈당한 존재는 시민이 아니라 사적 개인으로 축소된다. 아렌트가 전체주의의 본질을 공적 영역의 파괴에서 찾은 것은 이 때문이다. 전체주의는 총으로 사람을 죽이기 이전에, 먼저 사람들의 입을 닫게 만들어 시민을 소멸시킨다.

이 두 사상가의 논의를 교사의 문제에 적용하면, 한국에서 교사에게 부과된 '정치적 중립'의 실체가 드러난다. 공적 발언권을 박탈당한 교사는 아렌트적 의미에서 시민이 아니다. 그리고 시민이 아닌 존재가 다음 세대의 시민을 길러낸다는 것은 듀이의 논리에서 근본적인 모순이다.

파울로 프레이리(Paulo Freire)는 여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간다. 그는 '교육의 정치적 중립성'이라는 개념 자체를 정면으로 부정한다. 교사의 가르치는 행위는 결코 중립적일 수 없다. 교육은 언제나 현재의 불평등한 구조를 재생산하거나, 아니면 그것에 저항하는 방향 중 하나를 향한다. 교사에게 침묵을 강요하는 것은 중립이 아니다. 그것은 현재의 질서를 그대로 유지하는 편에 서는 선택이다. 침묵의 강요 자체가 하나의 정치적 행위다.

듀이, 아렌트, 프레이리. 세 사람의 논의는 서로 다른 방향에서 같은 결론을 향한다. 교사의 정치적 발언권은 부가적 권리가 아니라, 민주주의 교육의 존립 조건이라는 것.


2. 금지의 기원: 1963년, 쿠데타가 만든 법

그렇다면 한국에서 교사의 정치적 발언을 금지하는 법제는 언제 만들어졌는가.

놀랍게도, 1948년 제헌헌법은 공무원이나 교사의 정치활동을 전혀 제한하지 않았다. 대한민국이 건국될 때 교사는 다른 시민과 마찬가지로 정치적 권리를 가진 존재였다. 오히려 4·19혁명 직후인 1960년에는 교사들 스스로 교육 자주성 회복과 학원 민주화를 외치며 한국 최초의 교원노조를 결성했다. 1,500여 명의 교사가 참여한 이 4·19 교원노조는 당시 한국 민주화운동의 한 축이었다.

이 흐름을 끊어낸 것이 1961년 5·16 군사쿠데타다. 박정희 군사정부는 4·19 교원노조 간부 1,500여 명을 용공인사로 몰아 구속하고 교원노조를 강제 해산시켰다. 그리고 2년 후인 1963년, 군사정부는 국가공무원법을 전면 제정하면서 제65조에 공무원의 정치운동 금지 조항을 삽입했다. 헌법이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했음에도, 쿠데타 정부는 그것을 '금지'로 뒤바꿔버렸다. 보장받아야 할 권리가 봉쇄되어야 할 위험으로 전환된 것이다.

현재까지 초·중등 교사에게 적용되는 주요 제한 조항들을 보면 그 광범위함이 드러난다. 국가공무원법 제65조는 정당 가입과 정치운동을 금지한다. 정당법 제22조는 초·중등 교원의 정당 발기 및 당원 자격을 박탈한다. 공직선거법은 선거운동을 원천 차단한다. 교원노조법은 정치활동을 노조 활동 범위에서 배제한다. 이 조항들이 중첩적으로 작동하면서 교사는 수업 시간은 물론, 퇴근 후 개인 자격으로도 정치적 의사를 표현하는 데 심각한 제약을 받는다.

이 제도가 '교육의 중립성'을 위한 것이라는 주장은 역사적 사실 앞에서 설득력을 잃는다. 제도가 만들어진 것은 민주적 숙의의 결과가 아니라 쿠데타 정권의 필요에 의해서였다. 교사의 정치적 발언을 막아야 했던 것은, 교사가 학생을 시민으로 만드는 힘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3. 탄압의 역사: 교사들이 치른 대가

이 금지가 실제로 어떻게 작동했는지는 두 번의 교원노조 탄압이 잘 보여준다.

1961년, 군사정부는 4·19 교원노조 간부들을 혁명재판소에 세워 용공 혐의로 처벌했다. 교육의 자주성과 민주화를 요구했던 교사들이 '빨갱이'가 되었다. 이후 교사들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국가 도구로 동원되었다. 군사독재 시절 학교는, 한 외국 자료의 표현을 빌리면, "정부가 이데올로기를 강요하는 선전의 중심지"였다.

두 번째 탄압은 민주화의 열기가 채 식지 않은 1989년에 벌어졌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교사들은 '민주교육추진 전국교사협의회'를 결성하고 1989년 5월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출범시켰다. 2만여 명의 교사가 참여했다. 그러나 노태우 정권은 전교조를 불법 단체로 규정하고 1,527명의 교사를 강제 해직했다. 민주화 이후에도 교사의 조직적 목소리는 용납되지 않았다.

전교조가 합법화된 것은 1999년이었다. 1960년 4·19 교원노조 결성으로부터 39년, 전교조 출범으로부터 10년이 지난 뒤였다. 그리고 합법화 이후에도 전교조는 2013년 정부로부터 법외노조 통보를 받았고, 2020년 대법원 전원합의체 판결로 겨우 지위를 되찾았다.

이 역사가 보여주는 것은 단순하다. 교사를 정치적으로 침묵시키려는 시도는 민주화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법은 쿠데타가 만들었지만, 그 법을 유지하기로 선택한 것은 민주주의 사회였다.


4. 한국만의 예외: 국제 비교가 드러내는 것

이 금지가 얼마나 이례적인지는 국제 비교에서 선명하게 드러난다.

OECD 국가 중 교사의 정당 가입을 전면 금지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다. 프랑스, 독일, 핀란드, 노르웨이, 스웨덴, 뉴질랜드, 오스트리아에서는 교사를 포함한 공무원의 정치활동을 폭넓게 허용한다. 독일과 핀란드에서는 교사가 지역 정치의 중요한 구성원으로 활동하며 민주주의의 기반을 강화하는 역할을 한다고 평가받는다. 독일 연방의회에서 교사 출신 의원의 비율이 높은 것은 이 문화의 자연스러운 결과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이 문제를 여러 차례 정식으로 문제 삼았다. 2019년 ILO는 한국에 대해 "특히 초·중등학교 교사들이 수업 외·교실 밖에서 하는 정치활동, 정당 가입, 정치적 표현 활동까지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것은 국제 기준에 맞지 않는 과도한 제한"이라고 명시적으로 비판했다. 2025년에도 공무원과 교원의 정치기본권 보장을 촉구하는 공식 권고를 채택했다.

국회입법조사처 역시 "민주주의의 모범국이라 불리는 국가 중 공무원의 정당 가입 자체를 전면 금지하는 국가는 찾아보기 어렵다"며 제도 전환을 제안했다. 한국노총연구원이 2023년 실시한 조사에서는 학부모의 87.5%가 "우리나라도 OECD 수준으로 교원의 정치활동을 허용해야 한다"는 문항에 동의했다.

이 제도를 유지하는 것이 교육을 보호하기 위해서라는 논거는, 동일하거나 더 높은 교육의 질을 유지하면서도 교사의 정치적 자유를 보장하는 나라들의 존재 앞에서 힘을 잃는다.


5. 중립이라는 이름의 정치

'정치적 중립'이라는 원칙으로 돌아가보자. 그것이 진짜로 의미하는 것은 무엇인가.

교실이 특정 정당의 선전장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원칙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문제는 그 원칙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해왔는가이다.

실제 제재의 역사를 들여다보면 그 외연이 얼마나 넓은지 드러난다. 2009년 전교조 교사들은 4대강 사업에 반대하는 시국선언에 서명했다는 이유로 형사기소되어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을 받았다. 2015년에는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에 반대한 시국선언이 교육부의 검찰 고발로 이어졌다. 세월호 참사의 국가 책임을 묻는 교사 1만 5,853명의 집단 선언도 징계 방침을 촉발했다. 이들 중 누구도 특정 정당을 지지하지 않았다. 국가 정책에 반대 의견을 표명하고, 국가적 참사에 책임을 물은 것이 '정치적 중립 위반'이 되었다.

여기서 근본적인 질문이 생긴다. 4대강 사업을 비판하는 것은 왜 정치적 편향인가. 국정 교과서에 반대하는 것은 왜 중립 위반인가. 세월호 참사의 국가 책임을 묻는 것은 왜 정치적 행위인가. 이 질문들에 답하다 보면, '정치적 중립'이라는 개념이 실제로는 국가 권력의 행위를 비판하지 말라는 요구로 기능해왔음을 알 수 있다. 현재의 질서에 순응하는 것은 중립이고, 그것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은 정치적 편향이 되는 구조다.

프레이리가 갈파했듯, 교육에는 중립이 없다. 침묵을 강요하는 제도는 그 침묵을 통해 이미 하나의 정치적 선택을 하고 있다. 권력에 질문을 던지지 못하게 하는 것은, 권력에 복종하는 편에 서는 것이다.

민주주의 사회는 스스로 생각하고, 판단하고, 참여하는 시민을 필요로 한다. 그 시민을 길러내야 하는 교사가 스스로 그런 시민으로 살 수 없다면, 교실에서 무엇이 가르쳐질 수 있겠는가. 교사의 정치적 기본권은 교사 개인의 권리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민주주의가 다음 세대에 전달되는 방식의 문제다.

독재는 교사의 입을 막았다. 그리고 민주화 이후 우리 사회는 그 입을 열어주지 않은 채 60년을 보냈다. 그 비용이 지금 어떤 방식으로 청구되고 있는지는 다음 편에서 살펴본다.


다음 편: 수험생은 길렀지만 시민은 기르지 못했다 — 입시 구조와 사회과 교육의 약화, 그리고 세대의 정치적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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