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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왜 틀린 싸움을 하고 있는가— 학생인권 대 교권, 처음부터 잘못 설정된 구도

교육&철학

by by Noma 2026. 6. 3. 2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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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며

학생인권과 교권이 충돌한다는 주장은 오랫동안 반복되어 왔다. 학생의 권리가 강화될수록 교사의 권위가 약해지고, 반대로 교사의 권한이 커질수록 학생의 인권이 위협받는다는 대립 구도는 언론의 보도 방식이 되었고, 정치권의 정책 언어가 되었으며, 학부모 커뮤니티의 일상적인 갈등 문법으로 자리 잡았다.

이 구도가 완전히 허구라고 말하기는 어렵다. 교사들이 무기력해졌다는 현장 목소리는 사실이며, 학부모들이 교사를 신뢰하지 못하게 된 맥락도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어떤 현상이 실재한다는 것과 그 원인을 올바르게 진단했다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교사의 무기력함이 정말 학생인권의 강화 때문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곳에 원인이 있는지를 묻는 질문이 필요한 이유가 여기 있다.

학생인권과 교권이 대립한다는 전제는 두 개념이 같은 층위에 놓일 수 있다는 가정 위에서만 성립한다. 그러나 학생인권이 '보편적 인권'의 언어인 반면, 교권은 '전문직의 직무 권한'에 관한 언어다. 이 둘은 애초에 하나의 저울 위에 올려놓을 수 없다. 잘못된 질문은 언제나 잘못된 답으로 이어진다. 따라서 우리는 이 대립 구도 자체를 먼저 해체해야 한다.

교사는 학생인권을 침해하는 주체가 아니다. 오히려 학교라는 공간 안에서 학생의 인권을 보호하고 인권의식을 성장시키는 실천적 주체다. 인권의식을 가진 시민을 길러내는 것 자체가 교사의 책무이자 권한이기 때문이다. 이 명제가 낯설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리가 얼마나 오랜 시간 잘못된 구도에 갇혀 있었는지를 방증할 뿐이다.

1. 프레임은 어떻게 만들어지고 유지되는가

잘못된 프레임이 지속적으로 재생산되려면 그것을 떠받치는 구조적 동인이 있어야 한다. 학생인권 대 교권의 구도는 단순한 오해나 무지의 산물이 아니라, 서로 다른 세 주체의 이해관계 속에서 정교하게 생산되고 있다.

첫째, 언론은 구조적으로 갈등 프레임을 선호한다. 학생인권과 교권의 조화로운 공존은 뉴스가 되기 어렵지만, 둘의 충돌은 즉각적인 주목을 받는다. 복잡한 제도적 문제를 자극적인 대립 구도로 환원할수록 독자의 시선을 붙잡기 쉽고, 이 방식이 반복되면서 대중은 대립 프레임을 현실 자체로 받아들이게 된다.

둘째, 정치권에 이 구도는 소비하기 더없이 편리한 소재다. 진보 진영은 학생인권을, 보수 진영은 교권을 강조하면서 교육 문제는 손쉽게 진영 논리의 외투를 입는다. 교육이 이념 갈등의 장으로 변질되는 순간, 실질적인 제도 개선을 위한 논의는 뒷전으로 밀려난다.

셋째, 학부모의 구조적 위치 역시 이 프레임을 공고히 한다. 1997년 외환위기 이후 한국 사회에 이식된 시장주의는 교육 생태계마저 바꾸어 놓았다. 교육이 일종의 '서비스'로 재정의되면서 학부모는 자연스럽게 '소비자'의 위치로 이동했다. 소비자는 공급자를 신뢰하기보다 평가하고 감시한다. 교사를 전문가가 아닌 서비스 제공자로 바라보는 시각 속에서, 교사의 모든 전문적 판단은 잠재적 불만의 대상이 된다.

이 구조 안에서 '아동학대 신고'는 학부모가 교사에게 행사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수단으로 기능한다. 교사가 피의자의 위치에, 학부모가 피해자의 대리인 위치에 서는 이 비대칭적 권력 구조는 학부모 개인의 도덕성 문제라기보다 교사의 전문적 판단권이 제도적으로 보장되지 않아 발생한 결과다. 제도적 기반이 없는 곳에서 불신이 기본값이 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귀결이다.

2. 현장의 언어로 — 세 개의 장면

추상적 분석이 닿지 못하는 곳에 구체적인 삶과 사건이 있다. 다음 세 장면은 잘못된 구조가 교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 장면 ① — 담배를 지도한 교사 (경향신문, 2024) 교사 A씨는 담배를 피우는 학생에게 생활지도를 하다 '정서적 학대'로 아동학대 신고를 당했다. 교사 B씨는 생활지도 중 학생을 제지하는 과정에서 팔을 잡았다는 이유로 '신체적 학대'로 신고되었다. 두 사례 모두 관할 교육감이 '정당한 생활지도'라는 의견서를 수사기관에 제출했고, 최종 불기소로 종결되었다. 담배를 피우는 학생을 지도하는 행위가 아동학대 혐의를 받을 수 있는 법체계 안에서, 교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안전한 행동은 무엇일까. '방관'이 가장 합리적인 선택이 되는 순간, 그 피해는 교실 안의 다른 학생들이 고스란히 지게 된다.

 

  • 장면 ② — 교장이 신고한 교사 (한국일보, 2024) 서울 관악구의 한 초등학교에서 4학년 담임 교사가 학생 간의 초상권 갈등을 중재하기 위해 점심시간에 해당 학생을 불러 사실관계를 확인했다. 이후 학부모는 "다른 학생들이 있는 자리에서 아이를 조사했다"며 정서학대를 주장했다. 학교는 교사의 행동을 아동학대로 판단하지 않았지만, 교장은 학부모의 민원을 우려해 당일 교사를 아동학대로 신고했다. 교사는 수개월간 수사를 받은 끝에 무혐의 처분을 받았고 교권보호위원회로부터도 정당한 교육활동이었음을 인정받았으나, 정신과 치료를 받으며 예정보다 1년 일찍 전근을 떠났다. 결국 민원을 제기한 학부모의 뜻대로 상황이 정리된 셈이다. 이 사례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점은 신고의 주체가 학부모가 아닌 '교장'이라는 사실이다. 이는 개인의 판단 실패가 아닌 구조적 합리성의 산물이다. 학교장이 신고하지 않았을 때 감당해야 할 위험이 신고했을 때의 위험보다 크다고 계산되는 구조 속에서, 교사는 동료이자 관리자에게조차 잠재적 가해자로 취급된다.

 

  • 장면 ③ — 167일 (오마이뉴스, 2026) 2025년 8월, 수업 시간 내내 휴대전화를 사용하며 소란을 피운 학생에게 한 교사가 규정에 따라 '교사 지시 불이행' 벌점을 부과했다. 5일 뒤 교사는 학부모로부터 폭언 혐의로 신고당해 교장실로 호출되었다. 교사는 그런 발언을 한 적이 없었고, 교육감 역시 '정당한 생활지도'라는 의견서를 냈지만 수사는 멈추지 않았다. 학교와 교육청 조사, 성고충심사위원회, 지자체 조사, 경찰 수사가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동안 교사는 극심한 스트레스로 45일간 병가를 냈다. 167일 만에 경찰로부터 '혐의 없음' 통보를 받았지만, 교사는 여전히 검찰의 최종 처분을 기다리며 피를 말리고 있다. 수업 중 규정대로 벌점을 부과한 대가가 바로 '167일간의 고통'이었다.

교육감 의견서 제출 제도가 도입된 2023년 9월부터 2025년 8월까지, 교원 대상 아동학대 신고 중 71%가 '정당한 생활지도'로 판단되었고, 이 중 90%가 불기소 또는 불입건으로 종결되었다. 이 통계가 말해주는 진짜 비극은 신고된 사건들이 무죄라는 점이 아니다. 학대가 아니었음이 증명되기까지 교사들이 통과해야 하는 시간과 절차 그 자체가 이미 잔혹한 '처벌'로 작동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3. 이 구도가 은폐하는 것

학생인권 대 교권의 프레임이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하는 기능은 '진짜 원인 제공자'를 시야에서 지우는 것이다.

교사의 전문적 판단권을 실질적으로 약화시킨 것은 학생인권 운동이 아니다. 교사의 생활지도와 아동학대 사이의 경계를 법률적으로 정의하지 않은 채 방치한 입법의 공백, 교사를 잠재적 관리 대상으로 전제한 행정 시스템, 기재요령을 수백 페이지로 늘리면서도 교사의 자율적 판단 공간은 좁혀온 관료제의 팽창이 진짜 주범이다. 교사와 학생이 서로를 향해 삿대질하며 시선을 빼앗긴 사이, 불합리한 구조는 조용히 기득권을 유지한다.

이것이 잘못된 프레임이 가진 가장 큰 해악이다. 본래 연대해야 할 두 집단을 대립 관계로 재배치함으로써, 구조는 변화의 압력으로부터 자신을 방어한다. 싸움의 방향이 잘못 설정되어 있는 한, 싸움이 치열해질수록 모순된 구조는 더욱 공고해질 뿐이다.

4. 올바른 구도의 재설정 — 대립이 아니라 상호 조건

학생인권과 교사의 전문직 보장이 대립 관계라는 전제를 뒤집으면, 이 둘이 실은 '상호 조건'의 관계에 있다는 본질이 보인다.

교사의 전문적 판단권이 실질적으로 보장되지 않는 교실에서 학생이 누리는 권리는 형식적인 껍데기에 불과하다. 개입을 두려워하는 교사, 판단을 포기한 교사, 관계를 회피하는 교사가 가득한 곳에서 학생의 인권은 제도로만 선언될 뿐 교육적으로 실현되지 않는다. 방치와 보호는 다르며, 불개입이 결코 인권 존중이 될 수는 없다.

반대 방향도 마찬가지다. 학생을 인격적 주체로 대우하는 것은 교사라는 전문직이 갖추어야 할 윤리적 전제이지, 선택적 결과물이 아니다. 이 전제가 흔들리는 곳에서 전문직 권한의 확대는 권위주의로 흐를 위험을 내포한다. 교사의 전문성 강화와 학생의 인권 존중은 같은 방향을 가리킬 때에만 비로소 설득력을 얻는다.

즉, 둘은 제로섬(Zero-sum) 관계가 아니다. 함께 강화되거나 함께 약화되는 공동운명체다. 따라서 둘을 대립시키는 프레임은 어느 쪽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5. 구조적 해법 — 법의 어느 조항이 문제인가

앞서 살펴본 세 장면의 배경에는 공통적으로 하나의 법률 조항이 자리 잡고 있다. 바로 아동복지법 제17조 제5호, "아동의 정신건강 및 발달에 해를 끼치는 정서적 학대 행위" 금지 조항이다. 문제는 무엇이 '정서적 학대'에 해당하는지 그 기준이 지극히 모호하다는 점이며, 교사를 상대로 한 무분별한 아동학대 신고가 난무하는 구조적 근원이 바로 여기에 있다.

이 조항은 본래 가정 내 아동학대를 방지하고 처벌하기 위해 설계되었다. 그러나 2014년 아동학대처벌법 제정 이후 이 조항이 학교 현장에 기계적으로 적용되면서, 가정에서의 지속적·반복적 학대와 교실에서의 일회적 생활지도가 동일한 법적 잣대로 심판받는 비극이 시작되었다. 정서적 학대라는 개념이 가진 근원적 모호성 때문에, 훈육 목적의 말과 행동조차 아이에게 조금이라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면 정서적 학대로 포섭될 가능성이 열려 있는 것이다. 담배를 지도한 교사가 아동학대범으로 몰리는 것은 이 모호한 법이 만들어낸 논리적 귀결이다.

대법원도 최근 이러한 긴장 관계를 인식하기 시작했다. 2025년 6월, 대법원은 정서적 학대 혐의로 기소된 담임교사에게 무죄를 확정하며, 해당 발언이 "교육적 조치 중 감정을 통제하지 못하고 나온 훈계나 푸념에 가까운 것으로 볼 여지가 있고 학대의 의도가 없었다"고 판시했다. 또한 정서적 학대가 성립하려면 구체적인 피해가 입증되어야 한다는 기준도 제시했다. 그러나 판결은 어디까지나 사후 구제일 뿐이다. 무죄를 확정받기 전까지 그 교사는 이미 탈탈 털리는 수사 과정을 통과했고, 병가를 내야 했으며, 167일이라는 영혼을 갉아먹는 시간을 보낸 뒤였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사후 구제가 아니라 '사전 정의'다. 구체적으로 다음 세 가지 방향의 입법적 개입이 시급하다.

  • 첫째, 아동복지법 제17조 제5호의 '정서적 학대' 요건을 명확히 구체화해야 한다. 행위의 지속성, 반복성, 의도성을 필수 요건으로 명시하고, 법령과 학칙에 따른 정당한 생활지도는 적용 대상에서 원천 제외해야 한다. 지금처럼 사법부가 사안마다 자의적으로 판단하는 구조에서는 신고 자체가 이미 가혹한 처벌이기 때문이다.

 

  • 둘째, 교육감이 '정당한 생활지도' 의견서를 제출한 사안은 경찰 단계에서 수사 개시 없이 즉각 종결할 수 있도록 아동학대처벌법을 개정해야 한다. 현재는 의견서가 제출되어도 약 84%가 정식 입건되어 수사를 받는다. 교육 전문가의 판단이 수사 착수조차 막지 못한다면, 교육감 의견서 제도는 절차적 완충 장치가 아니라 한갓 형식적인 종이호랑이에 불과하다.

 

  • 셋째, 교사의 전문적 생활지도권을 초중등교육법에 구체적으로 명시해야 한다. 현재의 법체계는 교사가 '무엇을 하면 안 되는지'만 촘촘히 규정할 뿐, '무엇을 할 수 있는지'는 말하지 않는다. 권한 없는 책무라는 모순적 조건 속에서 교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합리적인 행동은 '방관'으로 수렴할 수밖에 없다.

 

이 세 가지 개혁은 학생인권을 후퇴시키는 것이 결코 아니다. 교사가 전문가로서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구조가 마련되어야, 학생 역시 방치가 아닌 제대로 된 '보호'를 받을 수 있다. 법이 교사를 잠재적 가해자로 전제하는 구조와, 학생이 제대로 된 교육을 받는 구조는 결코 양립할 수 없다.

 

나가며 — 누가 이 구도에서 이익을 얻는가

 

어떤 불합리한 프레임이 오랫동안 유지될 때, 그 지속성을 설명하는 가장 유효한 질문은 바로 "이 구도로 인해 누가 이익을 보는가"이다.

언론은 갈등 프레임으로 트래픽을 유치하고, 정치권은 이를 진영 논리로 소비하며, 관료제는 교사와 학생이 진흙탕 싸움을 벌이는 사이 제도 개혁의 칼날을 교묘히 피해 간다. 이 구도를 유지하려는 보이지 않는 카르텔이 존재한다면, 이 프레임을 깨는 행동은 단순한 인식의 교정을 넘어 대단히 정치적이고 실천적인 연대 행위여야 한다.

교사와 학생이 결코 적이 아니라 '같은 모순된 구조의 피해자'라는 인식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리고 그 인식을 '아동복지법 제17조 제5호 개정 요구'라는 구체적인 법률적 언어로 번역해 내야 한다. 그 요구가 다시 정치권의 진영 논리에 포획되어 오염되지 않도록 공론장에서 단단히 지켜내는 것, 그것이 우리가 진짜 싸워야 할 전쟁의 내용이다.

우리는 너무나 오랫동안 엉뚱한 과녁을 향해 틀린 싸움을 해왔다. 이제 과녁을 바꿀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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